"이러다 맨밥만 먹을 판"…우크라 전쟁에 떨고 있는 日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2-12-12 06:55   수정 2022-12-12 11:25


식량자급률 G7 꼴찌, 일본의 그늘(上)
에서는 지난 1만년 동안 일본인의 평균 신장이 줄어든 배경을 살펴봤다. 그런데 가뜩이나 키가 안 크는 일본인들이 더 작아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주요국 최저수준인 식량자급률 때문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최근 제시한 식단의 예를 보자. 식료품 수입이 끊겨서 자국산 식료품으로만 일본 전국민이 필요한 열량을 채워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밥상이다.


아침은 쌀밥 한 그릇, 장아찌와 낫또가 전부다. 점심과 저녁도 조촐하다. 점심은 우동 한 그릇과 샐러드, 사과 5분의 1조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저녁식사는 쌀밥 한 그릇, 야채볶음 두 접시, 구운 생선 한 토막이다.

우유는 4일에 한 잔, 달걀은 13일에 한 알, 구운 고기는 14일에 한 접시 먹을 수 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맨밥만 먹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후생노동성도 이런 식단을 유지하면 비타민B2, 나트륨, 칼슘, 크롬, 비오틴 부족이 우려된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떨고 있는 주변국 가운데 하나다. 식량자급률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아서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0년말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37%(열량 기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식량자급률이 73%에 달했던 1965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캐나다 미국 프랑스의 식량자급률(2019년 기준)은 100%를 넘고, 독일도 95%로 식량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영국과 이탈리아의 자급률도 68%와 59%로 일본을 크게 웃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식량 수입이 끊기면 맨밥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일본은 쌀(자급률 98%)을 제외하면 자급이 가능한 곡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자급 가능한 곡물을 늘리기 위해 논을 밀 경작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밀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쌀조차 일본 국내소비 감소로 인해 1998년 연간 생산량이 1000만t을 처음 밑돌았다. 2020년에는 814만t까지 줄었다.

일본인이 즐겨 찾는 소바는 주원료인 메밀가루 거의 대부분을 수입한다. 메밀가루를 주로 수입하는 중국에서 생산량이 줄자 올들어 일본의 소바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야채 자급률은 76%로 안정적이지만 섬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패류 자급률은 51%까지 떨어졌다. 축산물과 식물성 기름의 자급률도 16%와 3%에 불과하다.


빵과 면류의 재료인 밀가루와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대두는 수입국 편중이 과제로 지적된다. 옥수수는 99%를 미국과 브라질, 밀가루는 85%를 미국과 캐나다 두 개 나라로부터 수입한다. 대두는 미국 수입 의존도가 75%에 달한다.

마이니치신문은 "주요 수입국들이 이상기후나 재해, 분쟁에 휘말리면 일본이 식료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밀가루 값 상승은 서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멘 가격은올들어 한달도 빠지지 않고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 10월 일본 전역의 라멘 가격은 평균 628엔(약 6006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3엔 올랐다. 총무성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후 최고치다. 올 1월 이후 10개월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라멘은 서민 물가의 온도계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라멘 전문점들은 직접 뽑은 면과 스프에 돼지고기, 죽순, 달걀 등 다양한 고명을 올린다. 그만큼 재료값 상승의 영향을 쉽게 받는 품목이다.

라멘값 인상의 ‘주범’이 바로 면의 주원료인 밀가루였다. 총무성의 소매물가통계조사에 따르면 밀가루 가격은 1년 새 12.3% 올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의 공급이 불안정한 데다 이상 기후로 작황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멘 스프의 기본 재료인 간장도 주원료인 대두값 상승의 영향으로 5.8% 올랐다. 고명으로 사용하는 돼지 삼겹살, 육수를 내는 데 쓰는 다시마와 말린생선 가격도 0.2~1.5% 올랐다. 돼지 사료 가격과 어선의 연료비가 1년 내내 고공행진한 탓이다.


2021년 8월 현재 일본의 라멘 가게는 2만4257개. 인구 1만명당 2곳 꼴이다. 편의점 왕국 일본에는 5만5838개(2021년 10월)의 편의점이 있다. 대략 편의점 두 곳 당 라멘집이 1개 존재한다. 이런 일본에서 라멘값이 매월 사상 최고치를 이어간다는건 민심을 들끓게 만드는 요인이다.


위기감이 커지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섰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9일 처음으로 식량안정공급·농림수산업기반강화본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농수산업을 둘러싼 정세 변화와 함께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에 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식량안보와 농수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관련 정책을 대폭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식량자급률을 올리고 싶어도 단기간에 올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2035년까지 식량자급률을 45%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일본의 고령화가 식량자급률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1990년 849만명이었던 일본의 농업종사자는 2021년 136만3000명으로 줄었다. 30여년 새 농업인구가 84% 급감했다. 경작면적도 1990년 800만헥타르(ha)에서 2021년 435만ha로 줄었다. 농사 지을 땅도, 사람도 줄어드니 자급률이 오를 수가 없다는 분석이다. 정확히 한국의 식량 사정이 처한 문제이기도 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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